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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단번에 드린 영원한 속죄제

나이가 들으면 점점 영적으로 되어 간다.  처음에는 아니 아렸을 때는 뭣 모르고 남들도 다 나 같은 줄 알고 살면서 내가 그러니까 남들도 그렇겠지 하고 남의 심리를 파악하고 산다. 그러다가 점점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뭔가 배우기 시작한다. 남의 마음을 읽기 시작한다. 그런데 읽다 보면 당연히 모두가 거의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의 의식구조가 같듯이 살다 보면 체계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알아버린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외로우면 친구가 그립고 사람의 생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세상 말로 "척하면 착!"이라고 점점 더 빨라진다.

      우스게 소리를 한 마디 해야겠다. 세계에서 제일 바둑을 잘 두는 고단수가 둘이서 전세계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국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흑을 쥔 사람이 아주 오래 동안 수를 계산하고 백을 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또 계산하고를 반복하다가 정 가운데 돌을 하나 딱 놓더란다. 그러니까 백을 쥔 사람도 흑을 쥔 사람이 하던 것 같이 반복하여 고심을 하고 계산을 열심히 하더니 한참 있다가 돌을 던지면서 "내가 졌소!"라고 하면서 돌을 던졌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웃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초 스피드로 남의 마음을 읽게 된다. 한 두 번 고심하면서 인생을 배우면 나머지는 반복의 연속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전달 속도가 엄청나다. 프랑스의 유명한 장군이요 정치가인 나폴레옹은 "사람의 움직이는 힘은 유익과 공포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와 같이 사람은 서로가 다 연결이 되어 있고 느끼는 것이나 행동의 원리가 동일하다. 게다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변화시키고 하는 것에 대한 전파 속도가 엄청나다. 누가 어떤 새로운 사실이나 무엇을 발명하면 곧 전세계로 퍼져버린다. 우리는 성경의 표현대로 다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단 한번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길을 터 놓으면 그것은 영원한 제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길을 누군가가 터 놓아야만 했다. 구약시대는 선민사상을 중심으로 제사문화로 하나님과의 속죄의 길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제사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고 게다가 지성소에는 1년에 한 번 대 제사장만이 이스라엘의 나라 전체를 위하여서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구약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정리를 해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을 열어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  있는 희생물을 받지 않으신다. 첫 소산만 취하시고 절대로 흠이 있거나 온전치 못한 양이나 염소나 소는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아무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속죄제를 드림으로서 터 놓을 수가 없었다. 흠이 없고 점이 없고 죄가 없으신 분만이 그 속죄제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밖에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죄가 없으신 어린양과 같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영원히 허무시고 거룩한 산 제사를 통하여서 인류의 구원의 속죄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단 한 번의 완전한 한 번의 제사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다 씻어내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피 흘리려 드리는 제사가 필요 없이 예수님을 믿고 그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히브리서에 아주 잘 나와 있다. 나는 그냥 나의 히브리서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내 말로 쉽게 다시 쓴 것 뿐이다.

      글의 시작에 사람의 성정의 공통성과 서로에게 영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속도의 빠른 것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의 기도라도 주안에서 드린 기도는 반드시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상납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내려온다. 다만 그 응답을 알아채는 눈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은 어느 누가 기도했고 어느 누가 응답을 받았는지 표면적으로는 모르더라도 영혼의 깊은 곳에서는 다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수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이러한 영적인 특성 때문에 여러 번 같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신 것이다. 단 한 번의 죄 없으신 몸으로 딱 한 번의 제사가 필요했고 제자들에게 그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하게 하셨고 제자들을 통해서 나머지는 자동으로 도미노현상처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리는 한 번 경험하면 잘 박힌 못과 같다. (전도서 12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들에게 물처럼 흘러가면서 진리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 분의 지혜로 구약을 박사논문의 인터뷰에서처럼 뭉뚱그려서 1분만에 두 문장으로 요약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첫째 계명은 생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을 하셨다. 구약을 한 눈에 꿰뚫으시고 신약을 몸으로 쓰셔서 온 세계에 하나님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는 누누이 사람들이 성전을 두고 맹세하거나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말씀 그 자체인신 예수님 자신을 몰라보고 구약인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니까,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나중에 서기 70년 경에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다 허물어졌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직접 서게 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몰랐다. 나중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그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신 후에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시간을 통해서 수직적으로 조상과 또 후손들과 연결이 되어 있고 수평적으로 가족 친지들과 지역적으로 전세계로 연결이 되어있다. 예수님께서 전혀 죄가 없으신 독생자의 몸으로 단 한 번의 완벽한 제사를 드림으로 영원토록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십자가 상의 칠언 중에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상업적인 언어 표현을 쓰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죄값을 영원히 지불하셨다는 뜻이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여셨고 다시는 아무 제사도 드릴 필요가 없이 예수님의 이름만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의 거룩한 존귀한 성전으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예수를 자기 영혼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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