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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살 먹기와 피 마시기

예수를 닮는 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요새 세상은 전부 정보 시대로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고 어떤 길로 가면 끝은 어디인가가 다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이 신학자의 책 중에 Imatation of Christ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라는 신학자가 썼다.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한국 정서에 거슬린다. Imitation이라는 단어는 모방내지는 흉내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니까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겉이 먼저 닮아간다는 뜻이렸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늘 나의 구원에 대해서 의심하고 때로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많은 죄들이 생각이 나서 정말 쑥스럽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상한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 말을 하는 데 망설여진다. "속 마음은 어떻더라도 겉으로라도 즉 몸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아서 영혼은 둘째치고 몸만이라도 천국에 가게 해 달라."라고 말이다. (얘기가 주제에서 빗 나갔다. 비성경적인 기도임으로 잊어버리기 바란다.) 여담의 결론을 맺자면 나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자신이 없어도 염치가 없어도 교회에 굳세게 빠지지 않고 나간다.

      한국 사람은 특히 자기의 이름에 신경을 많이 쓴다. 권위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그 앞에서 부르는 것도 삼가야 하고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실례가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반석이라는 별명을 주시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더하셨다. 그런고로 이름 가지고 함부로 장난하다가 예수님의 운명(?)을 저주로 받아 살게되면 안 되겠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으시다고 하셨다. 잠잘 때나 머리 둘 곳을 걱정한다.  베개를 준비하고 말이다. 그 말은 잘 곳도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는데 말이다. 3년 동안 공생애를 살면서 예수님은 날마다 부흥회를 하시고 밤낮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설교하시고 기적과 이사를 일으키시면서 고농도의 압축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3년 동안 일반 사람이 평생을 해도 못 이룰 업적과 삶을 사셨던 것이다.  물론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은 축제의 시간도 있었고 또한 제자들과 같이 좋은 시간도 많이 가졌지만 한 마디로 머무실 곳도 없는 삶을 사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사형을 당하시는 비극까지 겪으셨던 것이다.

      성가대의 어떤 분이 권위 있는 장로님의 사모님의 이름을 가지고 농을 하더니 언젠가 소식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도 보아왔다. 성함이 월관이신데 얼간이라고 비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사모하여 예수님을 흉내 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이름을 가지고 엉터리로 풀거나 내가 원하는 식으로 유모스럽게 풀어나간다. 물론 웃고 즐기자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성수장로님은 대변과 소변이 거룩한 장로님이라던가, 신병우장로님은 새로운 병든 일하는 소라는 장로님이시고 원용국장로님은 오리지날 용이 사는 나라라는 뜻이고 강영용장로님은 강가에 살던 젊은 용이시고 임신혁집사는 임신을(?) 시켜서 혁명적인 삶을 살도록 아들을 낳는다는 우스게 소리를 해본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너무 부담스럽다. 높을 최, 밝을 명 그리고 빛날 환으로 최명환이다. 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부끄럽다. 이렇게 이름 가지고 장난치다가 혼줄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런 글들이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어쩌면 쓰기만하고 교회의 싸이트에는 안 올릴지도 모른다.

      이민교선교사의 책을 읽고 있는데 복음의 빚진 사람이라는 제목이다. 이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것이 소원이어서 홍수가 난 러시아의 한 지방에 봉사를 나갔다가 흑사병이던가 돌고 있었는데도 환자를 돌보다가 죽겠다고 의사들이 권하는 전염병 예방주사도 안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후 몇 년이 지나도 아직 살아 있다고 간증을 하는 것을 읽었다. 별 이상한 열정을 가진 선교사도 다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우직한 순교에 바탕을 둔 신앙을 가진 분이 부럽고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  

      내가 한 가지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느 강력한 정부에서 방을 내걸었다. "우리가 수천만 불을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주는데 조건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은 나중에는 우리가 사형을 시킬 것이다. 어떤 죄던지 얽어 매서 본인의 잘못으로 인하여 사형을 시킬 것이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광고나 정보에 대해 조작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은 우리가 가진다. 그리고 이 신용카드를 받은 사람은 늘 말이 없어야 하고 모든 것을 비밀로 한다."라는 방이었다. 대상자를 찾았는데 아무도 그 카드를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머저리 같은 한 남자가 그것을 쓰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신나게 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 사람은 크리스찬이어서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인생의 말로는 아직 미정이다. 이 소설은 내가 계속 쓰려고 구상하고 있다. 요는 아마 이 내가 쓰기로 구상하고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예수님의 흉내를 내기 원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소설을 써서 완성하는 것은 충분히 더 살아봐야 알겠다.)

      요한복음 6장에 이 내용이 나와 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의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말하신다. 그 글을 읽곤 나는 수년 동안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 했다. 나는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상으로 그들을 엽기적으로 처치를 한 적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그들 앞에서 온순한 강아지 같이 군다. 얼마나 가증한지 지금은 알겠고 회개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그러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이 말이 걸림이 되느냐고 하실 때 정말 걸림이 되었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서반아어로 그 성경구절들을 다시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계속 읽어나가니까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자기의 살과 피를 먹고 실족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 부활시키신다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께서 그를 천국에 들이신다는 뜻으로 쓰여 있다. 그래서 "우와! 희소식이다!"라고 또 "정말 복음이네!"하고 환호를 속을 질렀다. 그런데 유교적인 사회에서 자란 고로 아무리 해도 거북하고 그 말씀이 두렵다.

      그래서 나의 문제는 일단 해결되고 고생 끝 행복 시작의 핑크 장미빛의 삶이 시작하는지 알았다. 그런데 또 자세히 읽어보니까 "내 살과 피를 먹고 산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살 것이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말은 나를 위해 살고 나처럼 죽는다 그 뜻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너 나 마음대로 밟고 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좋은데, 나처럼 인생을 마칠 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먹고 마셔라~~"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정 위험하고 위급할 때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평소에는 그러지 않는다. 그 말은 예수님께 어리광 부리고 꼬집고 할퀴게 되고 심지어는 화가 나고 죄를 지을라치면 예수님이 미리 내 발 밑에 와서 밟히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 회개하고 죄송해서 마음이 침통해진다.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마 내게는 이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