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8 01:46

또 남자 그리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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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남자 그리고 여자

내가 전에 죄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더니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 요 녀석이 까불다가 권위자들에게 야단 맞고 자기의 더러운 죄를 다 까발기고 스스로 매장을 하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아예 읽지를 않으시나 보다.  

      남자와 여자의 영적 전쟁은 다양하다 모슬렘의 나라에서는 남자가 거의 하나님에 가까운 권위를 가졌고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어떤 분쟁이 있으면 여자의 편을 거의 든다. 자녀양육권 싸움이나 흘겨보기만 해도 경찰을 부르는 여성도 있지만 일단 경찰은 여자의 말에 더 무게를 둔다.

      근데 교회에서 여자와 남자가 이권을 가지고 싸우면 어떻게 하나? 우리교회는 장로교회이고 남자들의 권위와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전통이 역사적으로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회의 여자가 대다수이므로 사실 실세는 여자들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은 누구의 편을 들까? (나의 소견으로는 조은하목사님은 여자 편을 더 들으실 것 같고 김종규목사님은 남자 편을 더 드실 것 같다. ㅋㅋㅋㅋ 틀릴 수도 있지만 다만 내 소견일 뿐이다. 그리고 나야 남자니까 남자 편을 드는 게 당연히 좋다. 하하하하) 그러나 남자라고 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다 여자가 아니다. 남자도 여자 같은 남자가 있고 여자도 남자 같은 여자가 있다. 게다가 모든 사회에는 가정이라는 소단위로 이루어져 있고 또 부부라는 영적인 공동체가 있어서 도대체 여자라던가 남자라던가 하는 개념이 다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가 결정한다. 영이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해서 아무도 정확히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성령님께서 그 때 그 때마다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여주시는 것만을 알 수 있다.

      속에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면 무엇이든지 다 해결된다.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살아가는 목적과 가지고 태어난 성격이 있다. 그것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도 나무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렇고 고유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영원히 산다고 가정하면 법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불평할 사람도 없고 손해를 끼치거나 해서 물어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하나 이상 둘만이라도 모이면 벌써 뭐가 생긴다. 대화 협력 불화..... 물론 좋은 이익도 많지만 다툼과 손익계산이 있다.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절충하고 서로 양보하여 중간 점에서 만나면 참 좋은데 교과서나 성경에서처럼 그렇게 일이 쉽게 되어지지 않는다. 어떤 때는 나만 양보하게도 되고 어떤 때는 나만 주장해서 모든 이권을 거머쥐는 때도 있다. 아니면 어중간한 경우도 있고 천태만상이다.

      근데 사람이 하는 일이 엉성해 보여도 다 하나님의 결제아래에서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진다. 물론 한 사건의 케이스만 보면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개입되어서 오래 두고 보면 다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진다. 거기다가 영생이라는 그리고 천국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 더욱 진리 아래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서 상벌이 주어지는 것이다. 다만 누구는 그런 영생이라든지 하나님이라든지 하는 개념이 없이 살고 우리는 있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어떤 분쟁이 있으면 어디다가 중점을 두어야 할까? 사실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 즉 관련된 사람들과 그 단체 즉 여기서는 우리교회의 개개인 구성원에 의해서 승패가 결정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기치를 들고 또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사역을 하는 교회에서 다수와 힘에 의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모순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개입과 말씀에 의존하여서 재판을 하고 심리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하나의 판례가 생기고 그것이 앞으로의 많은 교회의 정책과 행동양식내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  작은 일이라도 아주 중요하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큰 일을 맡기시기 때문이고 작은 일 하나를 결정하는 것을 보고 그 속의 결정자와 구성원들의 영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속일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늦으나 빠르나 다 알게 되어 있다. (조직의 생명력이 거기에서 나오고 비쳐지기 때문이다.)

      요는 그 속에 예수님과 그 말씀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교회의 부흥을 보장하고 숫자를 늘릴 거라는 보장도 없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곧 미국과 이민교회는 교회의 숫자도 성도의 숫자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교회의 숫자의 부흥과 성도의 증강을 간절히 원하면 중국 대륙을 봐야만 한다. 폭발하니까!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 속에서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그런 상황과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까 생존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고 다음 세대에 잘 전해지고 그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서 높여지는 삶을 사는 것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예수는 승리하시고 우리교회의 모두의 영혼 속에 마음 속에 큰 기쁨과 생수를 폭포수같이 부어주실 것이다.

      글쎄 내가 어떤 한 분쟁에 있어서 누구의 손을 들어달라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한 쪽이 쫓겨나도 예수를 붙잡고 쫓겨나면 남은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하고 회개의 기회를 삼을 것이고 물론 다시 불러 축복할 수도 있고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진 쪽은 영혼이 가난해지고 연단을 통해서 영혼이 더욱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더욱 기뻐하시는 영혼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걸출한 곧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크게 쓰임 받는 귀한 영혼이 생겨나는 것을 크게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간에 결과도 중요하지만 양쪽 다 간절히 하나님을 붙잡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서 회개하고 서로의 요구에 따라서 자라나가고 양보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또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다고 하셨으니 천국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주위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양쪽을 화평케하는 역사도 기대해고 기도해야 하겠다. 그게 나이면 금상첨화이다.